본문 바로가기
엄마의 투병기록

2화 달력에 병원 일정이 적히기 시작했다.

by 모니카 쩡 2025. 12. 27.

 

달력에 병원 일정이 적히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을 들은 뒤에도 당장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달력에 적힌 글씨가 조금 달라 졌다.

아이들 일정 사이에 

병원이름과 시간이 하나씩 추가되었다.

 

처음에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날짜를 놓치지 않으면 되고,

시간에 맞춰 움직이면 된다고 여겼다.

아직은 마음까지 준비할 필요는 없다고 믿었다.

 

병원에 가는 날은 늘 비슷했다.

접수, 대기,설명.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옆에 앉아 말을 적거나, 적는 척만 했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원래의 하루가 시작됐다.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밀린 집안일을 했다.

그 사이에 

병원에서 들은 말들은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전화벨 소리에 먼저 반응하게 되었다.

병원 번호가 아니어도

괜히 마음이 앞섰다.

별일 없다는 말을 들으면 안도했고,

다음 일정을 들으면 조금씩 지쳤다.

 

그 무렵부터 

나는 엄마의 상태를 '생각하지 않는 방법'을 익혔다.

필요할 때만 떠올리고,

그 외의 시간에는 의도적으로 밀어냈다.

그래야 하루를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이 시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몰랐다.

아직은

마지막을 상상하지도 않았다.

그저 달력을 채우며

하루씩 넘기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가 가장 조용한 시기였다.

모든 것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아직은 마음이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믿었던 시간.

 

이 기록은

그 조용했던 날들을 지나

조금씩 무게가 달라지기 시작한 

그 과정으로 이어진다.